Press "Enter" to skip to content

[칼럼] 앞서가는게 맞나?

편집인 장현석

“당신은 너무 앞서간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고 사용한다. 주위 사람과 융화하지 못하고 모난 성격이라는 말을 점잖게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데 한국어로는 욕처럼 들리는 바로 이 말을 영어로 하면 칭찬이 된다. “You are thinking one step ahead.” 피부색이 다르다고 옳고 그름까지 다른 것은 아닐 텐데 참 신기하다. 어쩌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무능함을 억지로 정당화시키는 말로 사용하기 때문에 옳은 것이 그른 것으로 변질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애용하는 모든 것을 보자. 자동차, 핸드폰, 심지어 겨울에 먹는 딸기까지. 삶은 그렇게 한발 앞서간 사람들 덕에 편리해졌고 발전해 왔다. 물론 옛것 중에도 좋은 것이 많고, 빠른 발전은 지구온난화와 같은 파괴를 앞당긴다는 결정적인 부작용도 있다. 하지만 나무 두 쪽을 비벼 없던 불도 피우고 돌을 다듬어 연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태초부터 진보와 발전은 정해진 숙명이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겠지만, 영화를 찍는다는 생각으로 잠시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 지금으로부터 3개월 후. 어느 철물점에서 일하던 미국인 아빠는 7살 한참 이쁜 나이의 딸을 코로나바이러스로 잃는다. 딸을 간호하던 부인도 병에 걸려 격리되고 만날 수조차 없다. 전염이 두려워 다니던 철물점은 잠시 문을 닫고 일거리도 잃는다. 밤에는 누군가 침범할 것 같아 총을 들고 집을 지켜야 한다. 끊임없는 공포와 분노를 이 남자는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왜, 왜, 왜?”라며 왜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준 사람을 원망한다. “이놈의 중국인들이 박쥐를 잡아 처먹어서 생긴 병이야.” 남자의 분노는 급기야 누군가에게로 옮겨가고 이웃집에 사는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 분을 푼다. 이런 분노는 사회 전체로 와전되고….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인간을 분노와 공포, 절망 속에 빠트리는 팬더믹 상황에서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사회적 분노가 발생했을 때 이민자들에 대한 학대와 학살은 빈번히 벌어졌다. 상상하고 대비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다. 재외국민 보호법, 재외 동포 기본법이 만들어져야 하고 재난이나 전쟁이 발생했을 경우 재외 동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한국 국적까지 버리고 미국 시민권을 받았으면 그만”이라고 말하지만, 영토와 영역이라는 두 단어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이 출생지를 근본으로 두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소리다. 바로 그런 근본적인 개념 때문에 “원정출산”이라는 편법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여권이나 시민권에 “출생 국”이 영구 기록되는 이유도 바로 출생한 땅에 대한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권이 있더라도 미국 영토 혹은 영역 내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에 출마할 수도 없을 만큼 태어난 땅의 권리가 중요하다. 미국시민권을 받은 우리를 한국 정부가 지켜야 책임이 있는 이유다.

한인회를 중심으로 주요 도시에서는 매년 한인 축재가 벌어진다. 이를 위해 재외동포재단은 매년 수백만 불을 지원해 주고 있다. 한인 축제의 날은 바로 이런 일이 발생했을 경우 우리 이민자들은 어디에 어떻게 모여 우리 가정과 사업을 지킬 것인지를 재미난 놀이로 만들어 계몽하고 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먹고 마시고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코스모비즈를 발행하는 본 연구소는 지난해 미 전국의 한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문화 적응 교육, 훈련>을 실시하려 했다. 프로그램을 꼼꼼히 준비해 한국 정부와 한인 기업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한인 단체장들로부터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만 받은 것 같다.

우리의 가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의 사업체는 생존 그 자체다. 4.29 LA 폭동을 기억하고 어떻게 우리의 가정과 사업체를 지킬 것인지를 한발이 아니라 두발 세발 더 앞서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게 맞다. 설령 애써 준비해 놓고 그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손해날 일은 아니다. 머피의 법칙에 따르면 그렇게 열심히 재난을 대비하고 준비하면 재난은 우리를 비껴갈 확률도 높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시애틀 어느 양로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한인 여성이 한국을 다녀온 뒤 노인들이 줄지어 생명을 잃으면서 한인 이민자가 코로나바이러스의 큰 책임을 떠안게 된 것 같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은 일이니, 이제는 우리의 운명을 하늘에 맡겨둘 수밖에 없게 된 점이 아주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