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컬럼] 신용이라는 것

발행인 장현석

[2017년2월호, 78페이지)

흔히 미국을 “신용의 나라”라고 부른다. 죄를 지은 사람도 죄가 인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를 원칙으로 하는 믿음이 전제된 사회라서 그럴 것이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금전 관계에도 무죄 원칙주의가 발휘된다. 돈을 떼어먹기 전까지는 신용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한때는 이런 신용의 의미가 이웃 간의 관계,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서 이루어졌다. 명예로운 시스템 (Honor System)을 기본으로 한 사회적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신용이라는 단어가 크레딧카드 납부 여부나 외상값 제때 갚는 정도로 축소되어 읽히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인간의 가치가 잘못 정의되고 있는 것 같다.

돈이 없는 것이 죄인 세상이다. 크레딧 카드 빚을 몇 달만 늦게 내도 신용이 불량한 사람으로 낙인되고 그 기록이 온 세상에 알려져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원초적인 공정의 기회까지 상실하는 냉정해진 사회로 추락해 버렸다. 정의로움이나 선의, 양보와 같은 가치는 실패한 자들의 핑계 정도로 가치를 상실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신용이라는 제도를 지킬 수 있는 자들이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회다.

뷰티서플라이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장사가 잘 안 되어 돈에 쪼들려 외상값이 늦어지면 “신용이 나쁜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다. 한번 낙인이 찍히면 좀처럼 용서해 주지 않는 삼엄한 관계 속에서 장사를 해야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신용이 나쁘다고 낙인찍힌 사람들 가게에 가보면 주위 경쟁가게에 공격적이지 않고, 가격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정도에 따라 장사하려는 양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반대로 신용이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가게는 반칙과 공격을 원칙으로 삼는 경우도 허다하다.

계약서도 없이 계라는 금융시스템을 가동했던 한국의 경우는 미국보다 더 이런 현상이 심해졌다. 크레딧 카드뿐 아니라 전화 요금을 한 번이라도 늦게 내면 “신용 불량자”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원래부터 신용사회였던 미국이나 한국사회가 신용을 주제로 한 제도를 만들어 비신용사회로 전락해 버린 꼴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정보의 전달력이 높아진 요즘, 구글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시시콜콜한 티켓까지 범죄기록으로 잡혀 개인의 신상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무서운 세상이다. 스마트폰 덕에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의 기록까지 남게 된다. 경찰들도 요즘처럼 범인 검거가 쉬웠던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모든 사람은 시스템의 노예처럼 관리가 가능해진 세상이다.

물론, 범죄를 줄인다는 차원에서는 모두 좋은 변화다. 하지만 돈이 없어 티겟을 내지 못한 사람이 티켓값이라도 벌려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 곳곳에 설치된 CCTV에 찍히게 되고 번호판이 스캔되어 쉽게 잡히기 때문에 무면허 운전이라는 추가의 티켓을 받는 철저해진 사회. 법정에 불려가게 되면 그마저 가게 문 열어야 한다는 현실때문에 법정출두 명령을 불복하기 십상인데 당장 보안관이 찾아와 수갑을 채우고 구속하는 냉혹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정의를 외치며 장사를 해야 한다.

요즘 만큼이나 엄격했던 과거 프랑스에서 동생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빵 하나를 훔쳤던 장발장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렇게 법치주의만 내세운 억압적인 사회를 견디지 못한 시민들은 혁명을 일으켰다. 장발장을 끝까지 쫓던 자벌트 경관의 올곧음을 원망스러워해야 할까? 아니면 장발장을 잡은 뒤 자신이 종교처럼 지키려던 법치주의를 저버리고 장발장을 놓아주면서 스스로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 자벌트 경관의 결백함을 경이롭다 해야 할까? 정작 거짓을 말해서는 안되는 성당의 신부는 은 식기를 훔쳐 달아난 장발장을 거짓으로 구해주면서 장발장에게 믿음을 선물한다. 신부의 거짓말이 덕을 베풀줄 아는 성공한 사업가 장발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해 주었다는 따뜻한 이야기.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꽉 막힌 사회에서 신용이라는 금전적 제도로 인간의 존엄성까지 깎아내리는 일이 협소한 우리 업계에서는 없었으면 좋겠다. 돈이 없는 것이 죄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장사가 잘 안 되는 것도 죄라 할 수는 없다. 장발장의 허물을 덮어주고 촛대까지 얹어 보내준 신부의 마음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