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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울림 _ 흑인 음악

세계를 울리다

요즘 한국 방송을 보면 정말 노래를 잘 부르는 한국 사람이 이렇게 많나 싶은 생각이 든다. 가수야 그렇다치고 일반인들도 가수 못지않은 쟁쟁한 실력을 뽐내는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스트레스 중에 노래 못하는 스트레스, 음치 스트레스는 한국에만 있다는 어느 기자의 칼럼이 새삼 놀랍지 않다. K-pop의 인기는 또 어떠한가. 세계 문화 역사를 새로 쓰는 것처럼 동방의 작은 국가의 어린 가수들이 세계 속에서 위상을 떨치고 있다. 역시 한국인은 노래를 잘한다는 명제가 다시금 증명되는 것 같다.

그런데 방송에서 불려지는 노래 면면을 살펴보니, 우리네 어른 세대가 불렀던 그 가락과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다. R&B, 힙합, 펑키, 소울, 온통 신기한 이름을 가진 노래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낯선 이름의  멜로디에 우리의 정서를 실어 우리의 목소리로 불러도 어색하거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음악들은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그네들의 정취를 담아 오늘도 울려퍼지고 있다. 그렇다. 이제는 국경과 인종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은 이 음악들이 바로 흑인 음악이다. 백인 음악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클래식, 각 나라의 민요와 같은 전통 음악을 넘어 전 세계를 아우르는 대표 음악으로 자리 잡은 흑인 음악. 오랫동안 약자로서 누구보다 힘겨운 억압의 역사를 겪었던 이들의 음악이 어떻게 세계 대중음악의 대표 주자가 되었을까.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흑인들. 그들이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으로 머나먼 이곳까지 끌려오게 되면서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그 비극이 시작된다. 동등한 사람이 아닌 노예. 그들은 억압적인 인종 차별을 당했고,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하루 16시간이 넘는 노동을 감내해야만 했다. 웃음도 대화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들이 힘든 노동을 버텨낼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 가슴의 응어리를 드러낼 수 있었던 허락된 단 하나, 그것이 바로 필드홀러, 흑인의 노동요였다. 힘겨운 노동을 견뎌내야 하는 흑인들의 고통과 답답함, 설움을 신께 털어놓는 호소의 멜로디였다.

이러한 가혹한 일상생활에서 구제될 길을 찾아 나선 흑인들, 그들이 개신교와 만나고 찬송가와 조우하면서 필드홀러는 ‘흑인 영가’로 변모하다. 한편, 1920년대 이르러 미국의 산업이 제조업으로 바뀌면서 흑인들의 삶도 급격한 변화의 흐름을 타게 되는데, 많은 흑인이 농장이 있는 남부를 떠나 북부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흑인의 음악적 감수성에 도시의 유쾌한 소음과 활기가 더해진 블루스가 탄생한다.

20세기에 들어 흑인영가와 블루스는 각각 새로운 음악 장르를 낳는데, 바로 가스펠과 재즈이다. 1930년 경 발생한 가스펠은 흑인 영가가 블루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변모한 드라마틱하고 화려한 신앙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예수를 찬양하는 가사의 내용은 종교 음악과 같지만, 노래하는 방식은 정열적이며 예수에 대한 러브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재즈는 블루스의 영향 아래 1900년 경 파생된 음악으로 백인의 클래식 음악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발전하였다. 이 재즈를 지점으로 흑인음악은 진정으로 미국 음악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부상하게 이른다. 재즈는 뚜렷한 문화적 유산이 없는 미국인들에게, 미국에서 태어나 세계로 뻗어나간 미국 고유의 음악 장르로 인식된다. 미국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타자로 여겨졌던 흑인들, 그래서 그런지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고 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1930년 즈음, 시카고를 중심으로 블루스보다 조금 더 빠르고 경쾌한 리듬을 가미한 새로운 음악이 부상한다. 이름하여, 리듬 앤 블루스, 요즘은 줄여서 알앤비라고 통한다. 한국의 대중 음악계에서도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장르 중 하나로 우리 가수들도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를 알앤비에서 찾는다. 이후 리듬 앤 블루스는 백인 음악인 컨츄리 뮤직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20세기 대중 음악의 신기원을 여는 장르이자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로 대변되는 록큰롤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록큰롤은 이후 하드 락, 메탈 등 수많은 하위 장르를 탄생시키고 전 세계인의 헤드벵잉을 이끌어내었으며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음악의 아이콘이 되었다.

1970년 대 말, 우리는 또다시 흑인들에 의해 생겨난 전혀 새로운 음악의 충격에 빠지게 된다. 뉴욕의 길거리에서 젊은 흑인들의 중얼거림이 세계를 뒤흔드는 힙합음악으로 재탄생되어 순식간에 세계 대중음악의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들었다. 할렘 거리에서 흘러나온 이 길거리 음악은 엄청난 규모의 음반산업을 일으켰으며 신세대의 창조적 자기표현 방식의 하나가 되었다. 엄청난 열정으로 자신들의 일상을 빠른 비트의 리듬에 담아내는 가사와 읊조리는 방식의 음악은 억압과 차별 속에 주류에 편입할 수 없었던 변두리 젊은 흑인들의 외침이고 선언이었다.

흑인들은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유’를 외치고 싶었다. 음악이 행해지는 모든 장소 그곳이 공연장이든 길거리이든, 그곳을 자유롭게 뛰놀며 즉흥적으로 연주하고 아무런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털어놓는 것, 이를 통해 어쩌면 순간일지라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유에 대한 그들의 갈망은 세계인에게 감동과 공감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열정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음악은 힘이 세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어린아이도 슬픈 멜로디의 음악에 공감할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이 없더라도 아름다운 노래 가락에 실어 내뱉는 내 마음의 소리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감성의 힘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인 음악.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멀고 먼 길을 떠난 흑인들이 세상과 교류했던 그들의 음악에 세계인이 응답하고 공감하고 있다. 한의 정서와 저항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흑인 음악은 아주 긴 세월동안 세계인의 마음을 울리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소리가 되었다. 우리가 향유하는 그네들의 음악의 중심에는 고된 삶과 연결된 감수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것들은 언제나 우리의 감성과 조우하여 우리 삶 속으로 반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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