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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컬럼] 갑과 을의 시대는 끝나고

동아시아의 보편적 신분제도로 수천 년 지속되어 온 사농공상 (士農工商: 학자, 농민, 장인, 상인)의 사회적 순위가 일제 강점기를 계기로 뒤바뀌면서 한국은 갑과 을이라는 새로운 신분제도에 휩싸였다. 돈과 권력을 쥔 사람이 갑이 되고 나머지 모두는 을이 될 수밖에 없는 “도 아니면 모”의 치열한 경쟁이 지난 10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과 유럽도 돈 갖은 자가 더 많은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얼핏 보면 둘 다 비슷해 보이지만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도록 서로 나누어 먹자”는 개념의 사회주의적 가치는 확연하게 다르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서로 조금씩 나누어 공평하게 살자는 사회주의적 가치와 적절히 혼합되어 음양의 조화를 조금이나마 이루고 있는 반면, 한국의 갑을 주의는 사회주의적 가치는 배제된 채 자본과 권력의 결탁으로 부의 분배가 갑에게만 쏠리는 비합리적인 사회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같은 비합리적인 제도가 적절했던 시절도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식 모두를 공부시키지 못하는 가정은 장남 하나만 대학에 보내고 나머지 자식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국가 역시 기업 몇 개라도 키울 욕심에 나머지 모든 실업인들이 희생되어야 했던 것도 현실이었다. 문제는 어느 시점에선 가는 스스로 제도를 개선하고 약자에게까지 기회를 주면서 형평의 원칙을 복원시켜 놓았어야 옳다. 안타깝게도 권력과 돈을 쥔 자들의 과욕으로 갑과 을의 관계가 지속되면서 금수저와 흙수저, 핼조선이라는 사회적 분노가 쌓이기 시작하였고, 그 뇌관을 박근혜-최순실이 건드리면서 촛불을 든 성난 민심이 결국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국가 전반을 뜯어고치라는 주문을 외치게 하였다.

갑을 주의 사회는 보릿고개를 겪던 가난한 시절에는 경제발전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갑이 되기 위해 머리띠를 묶고 공부를 하도록 유도했고, 죽기 살기 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다 보니 눈부신 경제발전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문제는 경제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선 상황이 되면 스스로 자정능력을 발휘하여 합리적 사회구조로 변했어야 했는데 자본가와 권력가들의 과욕이 촛불이라는 철퇴를 끌고 나오도록 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박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 뷰티업계도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한발짝씩 물러서서 큰 시각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가발산업 초기에는 우리 업계 역시도 보릿고개를 경험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뷰티서플라이는 도떼기 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초라하고 어수선하던 시절이 있었다. 빈 가게 임대하고 겨우 중고 선반만 몇 개 갖다 놓을 수 있는 돈 밖에 없을 때에도 우리는 헤어 회사와 케미컬 도매업체들이 아무런 담보 없이 외상으로 물건을 공급해 준 덕에 가게를 소유할 수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헤어 회사 영업사원들도 호텔비를 아끼려고 소매점 주인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던 그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도 수없이 들어보았다. 그때는 죽기 살기식으로 치열하게 경쟁을 했어야 하고, 어떻게든 갑이 되려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스스로 자정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죽기 살기로 싸우기만 하면서 도매업체는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도 박한 이윤으로 내성은 오히려 이전보다 약해진 것 같다. 소매점들은 무조건 크게, 더 많은 가게를 오픈하겠다는 욕심으로 위험부담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이민자로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이웃과 친구를 장사때문에 잃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자신의 성공조차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승자의 모습은 초라함이다.

이제 갑을 주의 시대는 끝이 났다. 보릿고개도 옛말이다. 고국에서는 삶의 질을 더 큰 가치로 인정해 주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가난밖에 모르던 무지한 사람들이나 앞으로도 계속 죽기살기로 싸울 것이다. 갑이 을을 위해 희생하고, 을은 갑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의 세상이 열리는 새해다.
정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코스모비즈 임직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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