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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나라는 역사를 감추지 않는다

워싱턴 흑인역사문화 박물관 개관

screen-shot-2016-11-14-at-9-51-36-am2016년 9월 24일, 워싱턴 DC의 한복판에 위치한  ‘국립 흑인역사문화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이 문을 열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건너와 수많은 희생과 투쟁의 시간을 거쳐 미국 ‘시민’이 되기까지 흑인들의 영욕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 미국의 심장부에 당당히 자리 잡은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2012년 2월 그 첫 삽을 뜬 지 4년 7개월 만에 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드디어 정식 개관한 것이다. 이날 개관식에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아들 부시 전 대통령 부부가 참석해 역사적인 흑인 역사 문화 박물관의 개관을 축하했다. 이날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의 역사는 예전보다 더 많이 이야기 해야 하는 ‘영광의 역사’이며, 이곳의 이야기는 흑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미국인에 대한 것이다. 이 박물관은 ‘우리가 미국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이 처음 구상된 것이 101년 전이라고 하니, 얼마나 긴 시간을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의 계획과 완공의 여정이 사뭇 미국 역사에서 흑인이 걸어온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연방의회는 이 박물관을 건립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는데 늘 인색했고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러다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학생 대표로 행진했던 흑인 민권운동가 출신 정치인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1988년 관련 법안을 내놓으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계획 당시에 이 박물관은 지금과 같이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미국사 박물관의 한 코너에 덧붙이는 형식이었는데, 루이스 의원의 계속된 노력이 2003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법안 서명으로 결실을 맺게 되고 마침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퇴임 4개월 전 문을 여는 이 박물관은 이제 워싱턴의 새로운 랜드 마크로 자리 잡아 고난의 끝에서 영광에 도달한 당당한 흑인의 역사를 대변할 것이다.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은 국립자연사박물관, 우주항공박물관 등 많은 박물관이 밀집해 있는 워싱턴의 중심 내셔널 몰 안에 위치한다. 박물관의 외관은 아프리카 원주민이 쓰는 왕관을 연상시키는 듯한 3단 띠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구릿빛의 띠 형상은 모두 3,600개의 알루미늄 패널로 만들어져 있다. 박물관 측은 이 형상이 기도하는 사람의 손을 본뜬 것이라고 설명하며, 각 띠는 신념과 희망, 치유를 상징한다고 한다.

대부분 개인 소장자들이 기부한 물품들로 이루어진 전시물들을 살펴보면, 노예무역 선의 온갖 잔인한 도구와 장치들에서부터 흑인들이 선도해온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재즈와 블루스, 힙합과 관련된 소중한 장면들까지 다양하다. 최근 미국 재무부가 20달러 지폐의 인물로 선정한 흑인 역사의 상징적인 인물인 해리엇 터브먼의 유품과 냇 터너의 ‘피 묻은 성경’을 마주하면 비록 우리가 그들의 아픔과 고난에 완전히 공감할 수 없긴 하지만 적어도 이해하고 슬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그리고 2008년 당시 누군가 쓴 “로자가 앉았기 때문에 마틴이 걸을 수 있었고, 마틴이 걸었기 때문에 오바마가 뛸 수 있었다. 오바마는 뛰었고, 승리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이제 날 수 있다”라는 오바마 선거 캠페인 문구에 드디어 감동하게 될 터이다.screen-shot-2016-11-14-at-9-48-55-am

인간 사회의 그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부당하고 가혹했던 노예제도의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며 이제 새로운 시대에 도달한 그들의 이야기를 흑인역사문화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박물관의 개관이 갖는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흑백 갈등이 미국만큼 첨예한 나라도 없을 테지만, 또 대중음악처럼 흑인의 문화가 미국만큼 발전된 사회도 찾기 힘들다. 이 시간까지도 백인 경찰의 총에 목숨을 잃는 다수의 흑인과 그들의 투쟁이 한 쪽에서 일어나고 있기에 아직도 완전한 성취를 이룩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들의 역사가 아픈 역사인 동시에 승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을 통해서 반추해 볼 수 있다. 인종차별을 넘어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도록 끊임없이 투쟁하고 하나하나 쟁취해온 그 노력의 물리적 실체를 미국 수도의 중심부에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는 앞으로도 더 많이 이야기될 것이고, 그들이 이야기는 미국 전체의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우리 업계의 소비자 계층이 대부분 흑인이기에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커뮤니티와 연대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핵심 의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도 안 보이는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과 긍정적 관계를 확립하고 서로의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적이고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소규모의 접근 태도로는 흑인 전체 커뮤니티에 큰 영향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번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의 개관을 통해서 생각해 때, 가시적으로 흑인 커뮤니티와 연대하려는 한인 뷰티인의 제스처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으로 흑인 뷰티 헤리티지 펀드를 조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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